🩺 치매병동의 하루 – 묵직하다 하시던 김할머니, 그리고 의뢰서
치매병동의 하루로 들어간다.
평온해 보이지만 언제든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곳.
오늘도 익숙한 아침 인수인계를 받으며 하루가 시작된다.
“김○○ 할머니, 새벽에 혈변 보셨어요.”
말을 들은 순간, 머릿속이 복잡해졌다.
김할머니는 거동이 어렵고 침상에만 누워 지내신다.
언어 표현이 짧아 정확히 설명하긴 어렵지만
늘 "변 마려워… 뒤가 묵직해" 하고 말씀하셨다.
그 묵직함이 오늘은 피로 나타난 것이다.
👩⚕️ 주치의와의 간단하지만 중요한 대화
“선생님, 김할머니 혈변이 확인됐고요.
검붉은 색으로 양도 적지 않습니다.”
“통증은요?”
“배 쪽 살짝 거북해 하시고요, 체위 변경 시에도 불편한 표정 보이셨어요.”
“치질 이력은 없으셨죠?”
“네, 기록에도 없고 항문 주변 피부는 깨끗한 편입니다.”
“응급실로 외진 보내시죠. 전원 준비해주세요.”
👩⚕️ 보호자에게 신중히 설명하며
“보호자님, 김○○ 어르신 오늘 아침에 혈변이 있었어요.
장출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워
3차 병원 응급실로 외진 예정입니다.”
“사진도 찍어 보호자님께 보내드릴게요.
응급실 가시면 의사 선생님께 꼭 보여주시고
‘혈변’이라는 점 강조해 주세요.
그 말 하나가 진료 방향을 바꿀 수 있습니다.”
🚑 3차 병원 응급실 도착 후, 되돌아온 전화 한 통
환자분이 응급실로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
의료진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.
“의뢰서에는 ‘항문출혈’이라고 돼 있던데요?
저희는 혈변이라고 해서 전원 받았거든요.”
순간,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.
“실제 환자 상태는 항문출혈이 아닙니다.
장 출혈 양상이며 보호자분께 혈변 사진을 보내드렸고
응급실에서 확인 요청드렸습니다.”
“…알겠습니다. 사진 확인 후 진료 이어가겠습니다.”
📌 간호사의 포인트 정리
✔ 의료용어의 정확성
– 전화로는 '혈변', 의뢰서엔 '항문출혈'.
이 단어 하나 차이가 응급 진료를 가로막을 수 있다.
간호사는 이 간극을 줄이는 다리 역할을 해야 한다.
✔ 표현하기 어려운 환자일수록, 관찰이 전부다
– “묵직하다”는 평소와 다르지 않아 보였지만,
그 말의 횟수, 표정, 변의 양상까지 세심히 관찰해야 했다.
✔ 보호자는 정보 전달의 마지막 고리
– 혈변 사진을 보호자께 공유하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.
그러나 그 장면 없이는 상황 설명이 불가능했다.
🪶 하루의 끝, 생각에 잠기며
김할머니는 평소와 다름없는 듯했다.
하지만 오늘 그 묵직하다는 말에는
작은 위험 신호가 숨어 있었다.
치매병동의 하루는 늘 평범하게 보이지만,
작은 징후 하나가 환자의 생명선을 건드릴 수 있다.
오늘도 나는, 어르신의 말 없는 신호에 귀 기울이며 하루를 보냈다.